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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청 성심원 역사
[성심원 설립]

진주 이현동 서쪽에 개신교에서 설립된 한센인 마을인 구생원에 1954년부터 가톨릭 신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1957년 6월 구생원 내 가톨릭 신자의 요청으로 진주성당의 전교회장이었던 이태규씨가 파견되어 교리를 가르치기 시작하였으며, 1958년에는 18명의 환우들이 영세를 받았다.

이를 계기로 구생원 내 종교 갈등이 더욱 심화 되었고, 가톨릭 신자 환우들을 위한 삶의 터전이 필요하게 되었다. 1959년 진주성당 주임신부인 작은형제회 주콘스탄시오 신부의 도움으로 초가1채, 기와1채, 부지 2만 8천평을 매입하여 고통 받는 60여명의 사람들이 1959년 6월 18일에 이주하여 6월 19일 예수성심 대축일을 기념하여 ‘성심원’이라 명명하였다.

[1960년대]
◆ 의료 활동

1961년 오스트리아 가톨릭 부인회 원조로 성심인애병원을 신축하여 64년 초대 의사로 피부과 전인기의사가 부임(67년까지 활동)하여 외과, 내과, 치과, 피부과, 검사실, 안과 등 본격적인 환우 진료가 시작되었으며, 그해 병원을 2층으로 증축하고 산청지역 극빈자에게 무료로 약을 나눠주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65년 부르츠부르크 구라협회 원조로 다미안 시약소를 설치하여 서부경남 8개 지역 순회 나이동진료 실시했으며, Misereor 재단의 원조로 병원에 외과실, 산실, 실험실, 방사선실의 장비를 기증 받았다. 같은 해 의무원장으로 손경갑 선생(산청 재생의원)취임하였고 1968년 5월 23일에는 국립 가톨릭 의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 생활환경 개선(건축, 주거, 편의시설, 경제)

개원 후 환우들의 주거공간 마련을 계속된 노력의 결과, 1963년에는 스위스 엠마우스의 원조로 전기가 가설되었고 가정사, 독신사, 사무실, 판매점, 이발소, 미용실, 재봉실이 설치되고, 공동묘지가 조성되었다. 이듬해에는 상수도가 설치되었고, 정미소가 가동되었으며, 1966년 WÜrzburg를 비롯한 해외 원조로 돈사, 계사 및 잠실을 신축과 강변 축대공사가 진행되었다.

1968년에는 18,000여평의 임야 개간과 서독 구라협회, 가톨릭 구제회 원조로 급수탱크를 설치하였다. 그리고 1966년 2월 신용협동조합을 창립하였으나, 이듬해 폭동이 발생하여 유명무실한 상태로 거의 활동이 없다가 73년 2월 전에 발기인 대회를 열어 재창립을 하였고 8월에는 재무부 인가를 받았다.

◆ 신앙생활

설립초기에는 천막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였다. 1960년 부활주일을 앞두고 3월 30일 성인 13명, 유아 4명, 총 17명이 성심원에서는 처음으로 영세를 받았다.
1962년 인보성체수녀회에서 수녀 3분을 파견하여, 1964년 5월 1일까지 교리공부를 지도, 한센2세 교육과 주방 업무, 원장을 보좌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1965년에는 사제관, 수녀원을 신축하였고, 1966년 4월 24일 신축 성당 축성식이 있었다.

◆ 2세 교육

1962년 가을 4개의 교실과 큰 애들을 위한 공동침실이 딸린 숙소를 세워 4세부터 12세까지 80명 정도가 공부하고 잠잘 수 있도록 했다.
이듬해인 1963년 산청교육청으로부터 성심국민학교 설립인가를 받아 1963년 1월 20일부터 교육을 실시하였으며, 12월 문교부로부터 정식인가를 받았다.
그리고 63년 4월 14일 부활대축일에 200여명의 아동이 생활할 수 있는 ‘성심 보육원’을 완공하고 11월 25일 경남도지사의 설립인가를 받았다.

이후 국민학교 졸업이후의 진학에 대한 문제로 대전 갈마동에 기술학교를 세우기로 하고, 1967년 10월 24일 250여명의 학생과 선생님, 보모, 등 270명이 대전 목동의 舊수도원으로 이사를 했다.
그러나 新수도원이 미처 완공이 되지 않아 입주에 많은 혼란이 있었다.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국민학교와 보육소를 옮길 때 해당관청에 허가를 받아야 했으나 이탈리아 신부는 이런 절차를 무시하여, 성심국민학교, 성심 보육소, 성심 유치원의 허가가 취소되었고 그 결과 목동 강당에서 교육을 진행하였다.

1969년 4월 6일 예수부활대축일에 갈마동 건물이 일부가 완공되자 목동의 舊수도원에서 갈마동으로 이사를 하였으며, 국민학교를 비롯한 학교설립을 위해 노력했으나 이루어지지 못해했고, ‘충남 애육원’과 통합하여, ‘충남 애육원’이름으로 원생들을 갈마국민학교에 입학시켰다.

◆ 갈등

1964년 봄, 인보성체수녀회에서 파견 와서 원장을 보좌하던 수녀에게 환우가 돌을 던져 수녀를 다치게 했던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은 수녀에 대한 불만보다는 원장에 대한 불만이 표출 된 것으로 이 일로 수녀들은 철수를 하였다.

1967년 4월 30일 1차 폭동이 발생하였는데, 이는 성심원 원장인 정시모네신부가 소년마을설립을 위해 많은 에너지를 쏟으면서, 여러 사업들을 중단하게 되었고, 환우들의 옷가지 등 여러 모양으로 조금씩 희생이 요구된 데서 비롯되었다.
그러던 차에 정신부가 모금을 위해 이탈리아에 가 있는 동안 환우 일부가 공금을 훔쳐간 일이 발생하였는데, 정신부는 귀국 후 이 사건과 관련하여 “이번 달에는 돈을 줄 수 없습니다.”라고 밝혔고, 환우들은 강하게 반발하였지만 정신부는 수긍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폭동이 일어났지만 결정적인 원인은 초기 마을 정착되는 과정에서 마을사람들의 정서나 어려움보다 일을 추진하는데 급급하여, 충분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지지 않았고, 과도한 노동과 적은 임금, 환우의 자녀를 부모로부터 철저한 격리 등 정신부의 강력한 통솔에 대한 갈등이었다.

5월 3일 발생한 2차 폭동은 1차 폭동 때 원장인 정신부를 경질하고 주꼰스탄시오 신부가 오기로 했는데 정신부가 계속 성심원을 관리하자 발생하였다. 폭동 주도자 7명은 소록도로 보냈고 정시모네 신부는 이탈리아로 귀국함으로 마무리 되었다.

[1970년대]
◆ 의료활동

71년 마리아전교자프란치스꼬수녀회에서 4명의 수녀가 부임하여 병원업무와 약국업무를 담당했으며, 이탈리아 노요한신부는 1972년부터 78년까지 간호사로 봉사했다.
그리고 72년 3월 비영리 병원으로 개설 인가를 받아 ‘성심인애병원’으로 개명을 했으며, 그해 4월 아씨시천사들의성마리아회에서 기증한 새 구급차가 도착했으며, 78년 6월에 성심인애병원지를 창간했다.

◆ 생활환경 개선(건축, 주거, 편의시설, 경제)

독일 웨덴 지방의 원조로 71년 12월 성심교 교량 공사가 시작되어 72년 6월에 개통되었다. 교량의 개통은 그동안 물자운반을 위해 작은 나룻배를 이용해야 하는 불편을 해소하여 차량을 통한 물자의 공급이 가능케 하였고, 더욱이 지역사회와 원할한 교류와 소통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72년에는 전화를 개통하였고 74년에는 1.5km의 간선도로를 만들었다.

76년 목욕탕, 샤워실 증ㆍ개축과 여자 독신사 신축이 있었으며, 8월 성심원 내에 루르드 성모 동굴 완성했다.

77년에는 물탱크가 설치가 되었고, 매점 및 창고가 신축 되었다. 79년 5월에는 수도원이, 7월에는 남자독신사 ‘안또니오 집’이 착공하여 80년에 완공되었다.

한센인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해 1971년에 8,000여 그루의 밤나무를 심었으며 79년에는 돈사 5동을 신축하였으며,
76년에는 재속 프란치스꼬회 회원 중심으로 결성된 후원회인 미라회를 창설하였다. 미라회의 창설로 활발한 후원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 2세 교육

70년 12월 대전 도청에 환우 자녀를 위한 보육시설인 ‘요한 23세 소년마을’ 인가를 신청하여, 72년 2월 보건사회부로부터 정식 인가를 받았다. 유치원 아이들은 자체 교육을 받고, 국민학생은 갈마국민학교로, 중학생은 시내 전역으로 학교를 배치 받았다. 한센 2세들을 위한 기술학교 설립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했지만 예산 등의 문제로 무산되고, 많은 어려움으로 부득이하게 소년마을을 진주로 이전하기로 결정했다.

78년 5월 소년마을 부지를 매각하고, 11월 진주 하대동에 소년마을을 착공하여 이듬해 5월 완공을 했다. 원생들은 78년 12월 진주 칠암동 수도원에 임시 입주하고, 79년 12월에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았다. 그리고 1975년 1월, 성심원 내 유치원이 완공 되었다.

[1980년대]
◆ 생활환경 개선(건축, 주거, 편의시설, 경제)

1980년 2월에 인터폰을 설치하였고, 같은 해 마을 취약지역 축대공사와 독신사 화장실을 조성하였으며, 직원실 상수도를 시설하였다. 81년에는 병원 등 공공건물 외벽 도색 작업이 진행되었고 82년 1월에 ‘다미아노의 집’ 신축공사가 진행되어 10월에 완공되었다.

83년에는 ‘아녜스의 집’ 부대시설 조성,
84년 5월 독신사 주방에 스팀 취사,
85년 여자 독신사, 가정사 증개축 축성식, 87년 12월 교육관 완공,
88년 식수라인 설치(4km), 묘지 이장(157기), 축산단지 정비, 수녀원 신축,
그리고 89 3월. 공청안테나 설치(부산 서면 전자상가 봉사단 일동), 12월,. 기도의 집 축성식. 12월 10일 강당완공(120평)와 같은 많은 시설 공사가 있었다.

◆성심교

1984 7월 7일. 폭우로 인해 교량이 유실되어 한 척의 나룻배로 사료 등 물자와 사람을 이동 시켰다. 공사비 전액을 국가에서 부담하는 것으로 하여 84년 11월에 착공하여 85년 9월 교량 준공식을 하였으나 87년 7월 16일, 태풍 셀마로 두 번째 교량 유실되었다. 이때는 많은 재산 피해뿐만 아니라 소중한 생명의 피해도 있었다.
87년 10월 임시가교 개통되어 부분적 차량 통행 가능했으며 12월 11일, 세 번째 교량공사가 착공되었고
88년 12월 세 번째 교량이 준공되었다.

◆ 2세 교육

80년 8월 15일 소년마을 내에 루르드 성모 동굴이 세워졌고, 그해 12월에는 소년마을 후원회인 ‘초록회’를 결성하여 소년마을 운영에 조금씩 도움을 얻을 수 있었다. 83년에는 소년마을 안에 온수 보일러가 설치되어 원생들의 편리를 도모할 수 있었으며,
84년 11월 진주시청에 소년마을 인가 신청을 하였다.
88년 6월 15일 원생의 일부는 부산 대연동의 성프란치스꼬의집으로, 일부는 부산 ‘소년마을’로 이주시키고 하대동 소년마을은 폐쇄하였다.

◆ 경호마을

생활인 중 주요 요직에 있으면서, 축사로 어느 정도 경제적 자립 능력를 갖춘 몇 사람들이 성심원에서 완전 독립을 희망했고 성심원 입장에서도 축산부 일을 맡으면서 공금이 투명하지 못하고, 몇 몇 사람만 잘 사는 것으로 인해 그러지 못한 사람들의 불만 등의 문제가 있어 81년 10월 11일. 9세대 12명을 자립마을인 경호농장으로 분리 이주하였다.

◆ 기타

81년 11월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성심원을 위한 자선음악회가 있었으며, 83년 보사부의 방침에 따라 성심인애병원은 양성환자, 불구 3도환자, 60세 이상의 무의탁 환자를 수용하는 병원으로 지정되었으며, 84년 6월 29일 설립 25주년 기념행사를 진행하였다.
그리고 86 2월 23일. 인간시대 방영(촬영 2월 4일~8일)되었으며, 87년 6월 10일. 미라회 서울 사무소를 열었다.

[1990년대]
◆ 생활환경 개선(건축, 주거, 편의시설, 경제)

은인과 미라회 회원, 방문자와 봉사자, 개인이나 가족단위의 피정자, 강사들을 위한 숙소로 사용하기 위해 베타니아집을 1991년에 공사를 시작하여 1992년 3월 2일 준공하였다.

1992년 1월에는 각 가정사의 난방시설인 연탄 보일러를 기름 보일러로 전환 교체하는 공사를 완료함으로써 어르신들에게 연탄 보일러의 위험과 번거로움에서 벗어나 편리하고 쾌적한 환경을 조성해 주는 등 획기적인 생활개선을 할 수 있었다.
1991년 2월에는 독신사의 주방담당 책임자로 부임한 성모영보 수녀회들이 거주할 거처가 마땅치 않아 수녀원을 수리하였고 12월에는 성당 안에 있는 제단과 감실을 일반 성당과 같이 만들며 장궤틀을 설치하고 감실 받침대, 기름보일러, 온풍기를 설치하였다. 이와 더불어 건물 내, 외벽에 도색을 하여 성당을 새롭게 단장 하였다.
가족들의 고령화로 점차 노인들 수가 증가하자 경로당을 짓기로 하고 1992년 1월 16일 관구평의회에서 신축공사 승인을 받았다.
1992년 7월에 공사가 완료된 경로당은 8월 27일 상수도 통수식과 함께 축성식을 갖게 되었다.

1992년 2월에는 원내 물 사정이 아주 나빠서 새로운 물탱크를 설치해야 한다는 내용을 관구에 요청하여 승인을 받은 뒤에 산청군의 도움과 자체의 돈을 모아 6월에 공사를 시작하였다. 이 공사가 완료됨으로써 성심원 안에는 원활한 급수가 가능하게 되었다. 아울러 산사태 방지 공사와 농로 포장공사, 그리고 수도관 교체공사를 병행했다. 앞 못 보는 환우들에게 편의를 제공하는 측면에서 독신사 복도에 손잡이를 설치하였고, 독신사에 온수를 공급함으로써 겨울에는 아예 씻을 엄두도 못 내었을 정도로 불편했던 환우들의 불편을 해소했다.

1994년 2월에는 취로사업의 일환으로 마을의 상수도 연결공사, 수녀원과 도로의 연결 포장공사, 강당과 도로의 연결 공사를 추진하였고 남자 봉사자 숙소의 샤워실과 공동발 그리고 화장실을 개조 하였으며, 아울러 여자 봉사자 숙소를 위해 가정사 한 동에 대한 수리를 완료 하였다.

◆ 수녀들의 독신사 주방 담당

주방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 관구에서는 성모영보 수녀회에 요청하여 1991년 4월 수녀 4명이 부임하여 독신사 주방을 책임지게 되었다.
1995년 4월 성모영보 수녀회가 복지관 건립에 따른 인원 투입으로 분원을 철수하자 이미 봉사하고 있던 마리아 전교자 프란치스꼬 수녀회에 요청하여 독신사 주방을 돌보게 했다.

◆ 성심원의 사회복지 시설 인가

1995년 2월부터 사회복지 시설 인가를 위한 실무진이 구성되어 본격적인 작업이 추진되었다. 1995년 5월 산청 소위원회에서는 15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요양시설의 신축에 대한 검토와 함께 남아 있는 건물의 활용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한 뒤 산청군청에 관련 서류를 접수하고 6월 21일에 시설인가 통보를 받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생계비와 의료비만 지원하던 정부보조금이 시설인가 후, 직원의 인건비와 시설의 운영비까지 지원되어 질 높은 서비스를 실시하게 되었다. 또한 장애인에게 필요한 편의시설 설치와 노후된 부분을 개, 보수하는 작업을 하게 되었다.

한편 시설인가와 함께 ‘성심인애병원’이라는 시설명칭을 변경 하여, 나환우 요양 시설을 ‘성심원’, 나장애인 요양시설을 ‘성심인애원’으로 각각 지었으며 대표명칭은 성심원으로 정하였다.

◆ 루케치오 집 축성식

1995년 6월 시설인가 후, 시설의 전면적인 개,보수 공사가 있었다. 후원회 사무실과 손님 숙소로 사용되던 미라회 건물의 1층을 수리하여 부부요양소‘루케치오집’을 완성 하였다.
부부요양소 건립의 취지는 가정사에서 질병과 장애 때문에 정상적인 가정 생활을 영위하기 힘든 부부들을 함께 거주케 하여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것이었다.

◆ 성심원 40주년 행사

1999년 설립 40주년을 맞아 기념식과 다채로운 행사를 실시하였다. 개원 기념일에 앞서 6월 2일 기념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고객의 신발을 신고 걸어라”라는 주제를 가지고 한국 감마모델 연구소장이신 김광숙 님을 모시고 성심원의 철학, 생산품, 직원들의 능력과 자질에 대한 강의를 실시하였다. 이 세미나에는 재단 산하 시설과 산청군 관계기관 직원들도 참여하였다.

6월 7일~9일 개최된 40주년 기념 마을잔치는 윷놀이, 노래자랑, 춤 경연대회, 장기자랑으로 진행되었다.
개원 기념일인 6월 11일에는 마산교구장 박정일(미카엘) 주교님의 주례로 기념미사를 가졌고 이어서 기념식을 통해 감사의 인사, 축사, 감사패 전달이 이루어졌다. 중식 후에는 대구대 박태영 교수의 “사회복지시설 어떻게 변화 되어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강의가 있었고, 한민족 예술단의 축하공연이 있었다.
또한 7월에는 1959년 성심원 개원에서부터 1996년 시설인가를 비롯한 역사를 정리하고 앞으로 다가올 50년사 편찬을 위한 준비 작업으로 책자를 발간하였다.

[2000년대]
◆ 산청군내 재가복지 사업 실시

2000년 1월부터 사회복지시설이 지역사회에 참여함으로써 지역사회와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들고자 산청관내 독거노인 및 거동 불편 장애인(140세대)에 대한 재가 서비스 지원을 실시하게 되었다.
4명의 재가복지 지원팀이 구성되어 매일 서비스를 지원하여 지역주민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 납골묘원 조성

어르신들의 고령화와 함께 사망자수가 늘어남에 따라 기존의 공동묘지는 더 이상의 이용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여름 장마철에는 산에서 유입되는 빗물로 묘지가 유실되는 일이 자주 발생하였다. 그래서 성당 뒤편 1,465㎡ 부지에 선종하신 어르신들과 가족들을 위해 경건하고 아담하게 조성하였다.

(주)남이 건설이 2000년 9월부터 12월까지 심혈을 기울여 완공 하였다.
완공 후 공동묘지에 안장 되었던 어르신들을 납골묘원으로 이장하는 작업을 가졌고 이어서 2001년 06월 21일 착공식을 가졌다.
총 1,872기의 유해가 모셔질 수 있는 이 묘원은 흡사 아파트와 같은 분위기를 자아내며 특히 336칸은 부부를 위한 공간으로 마련되어 있어서, 한 공간에 부부의 유해를 함께 모실 수 있게 되었다.

◆ 전문요양원 완공

어르신들의 고령화와 한센병 후유장애로 인한 보다 편안한 보금자리와 의료ᐧ 케어서비스 제공을 위해 2001년 6월 21일 중증장애인 요양시설인 전문요양원을 착공, 2003년 8월 28일 완공했다.
연면적 6,395㎡의 전문요양원에는 집중케어실, 호스피스실, 의료지원시설, 주방과 공동식당, 행정사무실 등이 있다.
이외에도 시설이용자인 독신 노인, 약자노인, 중증장애인들이 이용하는데 불편이 없는 다양한 시설 등을 갖추고 있다.

◆ 한센노인 주거개선사업

한센노인 주거환경 개선을 위해 60세대가 입주 가능한 노인전문주택 가정사 4개동은 2005년 10월 4일 착공, 2008년 10월 8일 완공했다. 총 공사비 46억여 원이 들어간 가정사는 어르신들의 건강상태를 고려해 노인친화형으로 설계, 휠체어를 타고 1 ~ 3층 모두 손쉽게 외부로 출입이 가능할 뿐 아니라 건물 내부에도 문턱이 없어 드나들기 편리하도록 건축했다.

김치냉장고, 드럼세탁기, 붙박이장, 화장실 비데를 각 가정마다 설치하여 불편함 없이 편안한 노후생활을 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남녀 경로당과 어르신들의 공동목욕시설도 갖춰 보다 안락한 노후를 보낼 수 있도록 했다.

◆ 한센어르신들 시집 발간

2014 인문도시지원사업의 일환인 ‘시 치유 모임’을 계속해 오면서 어르신들의 삶의 애환을 자전적 소개와 더불어 담백하게 풀어 엮었다. 노시인들의 육필노래는 우리 가슴을 찡하게 울린다
2015년 3월 시집‘장단 없어도 우린 광대처럼 춤을 추었다.’를 <도서출판 알렙>에서 출간하였다. <2014 인문도시 지원사업>의 지원을 받고, 인제대학교 김성리 교수가 지도하고 엮었다.

◆ 지역주민들과 함께 하는 열린시설

설립 50주년을 맞은 2009년 6월 19일 지역주민들을 초청,‘지역주민과 함께하는 열린음악회’가 요양원 앞 잔디밭에서 열렸다.
2012년 부터는 해마다 한센한센인과 비한센인, 장애인과 비장애인 차별 없는 하나 되는 세상을 바라는 소통의 축제“성심인애축제”를 열고 있다.
2016년 6월 4일부터 3일 동안의 제 5회 축제 때는 지난 1976년 발족한 성심원 한센인들을 돕기 위한 후원회인‘미라회’설립 40주년을 맞아 은인들을 생각하는 피정도 함께 했다.

산청 성심원은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서 체험도 하고 피정도 하는 힐링 장소로도 거듭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을 통해 교육과 피정, 연수와 캠프 등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한센인들과 장애인들에 대한 관심을 갖도록 해 주며 그들을 통해 스스로 치유되는 힘을 제공하기도 한다.
또한 지리산 둘레길이 지나는 자리라 일반인들에게도 복지체험의 장이 되고 있다. 이러한 점에서 반세기가 넘는 한센인들의 역사를 담은 ‘성심원역사관’을 2017년 10월 말에 요양원 2층 요양원 성당가는 길목에 마련하였다.
이와 더불어 역사관 맞은 편에 방문자, 후원자, 어르신 가족들이 방문했을 때 함께하기 위한 만남의 장소 보눔 카페도 문을 열어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산청 성심원은 내년 2019년이면 설립 60주년을 맞는다. 미래적으로 한센요양시설로서의 성심원은 국립 소록도 병원과 더불어 마지막까지 한센인들을 위한 보루로 남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센인들이 중심이 되었던 중증장애인거주시설 성심인애원은 점점 일반 중증장애인들이 중심이 되는 시설로 변화되어갈 것이다.

◆(재)프란치스꼬회 산청분소 산하 사회복지시설

1. 성심원(한센생활시설)
→ 한센병력자 100%로 경증부터 장애등급 2급에 속하는 어르신들이 생활하는 한센생활시설이다.

2. 성심인애원(중증장애인거주시설)
→ 생활인들은 크게 한센병으로 인한 중도장애인과 일반 중증장애를 가진 분으로 분류되어지며, 입소자 모두 장애등급 1~2급에 속하는 중증장애인들이다. 연령층은 10대부터 90대까지 다양하게 분포되어 있다.

3. 산청인애노인통합지원센터
→ 산청읍내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재가노인들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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